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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생애와 작품들 그리고 논란이 되었던 사건

by 리지와 함께 202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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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저명한 화가인 천경자는 한국의 현대 미술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의 인생 여정과 문화적 성취는 한국과 세계의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천경자의 삶과 그녀가 예술계에 영향을 미쳐던 작품들과 그녀를 둘러싼 논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천경자 '막은 내리고' 1989

 

 

생애 

천경자는 1924년 11월 11일 대한민국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군서기였던 아버지 천성욱과 외할아버지 슬하 무남독녀였던 어머니 박운아의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사상이 깨어있었던 할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으며 천자문과 창까지 배우며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냅니다 보통학교 1학년 때 일본인 담임 선생이 그림에 재능을 발견해냈고 전주여고 시절에 혼담이 오가자 시집가기가 싫어 1940년 17살에 여수항을 출발해 도쿄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는 야수파나 입체파의 그림을 가르치는 과가 아닌 곱고 섬세한 일본화 풍이 마음에 들어 일본화 고등과로 가서 모델을 보고 관찰해 섬세하게 표현하는 법을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일본 유학 중 '祖父'와 '老婦'가 입선을 하며 재능을 인정받고 파리 아카데미 고에쓰에서 공부한  뒤 귀국해서 1955년 대한미술협회전에 작품을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수필가로도 활동했는데 1950년대부터 발표한 수필을 모아 1955년 첫 수필집 '여인소묘'를 출간하기도 했으며 평생 발표한 저서만 10권이 넘을 정도로 당시에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천경자는 동양화가이면서도 대담하게 밝은 색체를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에서 공부해서 지나치게 왜색에 물들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습니다 꽃과 여인을 중요한 소재로 색 질감의 섬세함 그리고 일상에서 설정되는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그녀의 독특한 스타일은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천경자의 예술을 정의하는 측면들 중 하나는 한국의 지리와 문화의 고요하고 조화로운 배경을 포착하는 그녀의 능력입니다 그녀의 작품은 종종 전통과 소박함의 혼합으로 묘사되는 한국의 풍부한 예술 유산에 대한 향수와 감탄을 이끌어내는 강렬한 색상과 복잡한 세부 사항으로 유명합니다 여성에게 보수적인 시대에 태어났음에도 상당히 개방적인 사람이었던 그녀는 베트남 전쟁 당시 종군화가단의 일원으로 참가해서 기록화를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녀의 말년은 위작 논란과 사망설로 아름답지 못하게 얼룩졌지만 한국 미술계에 청경자의 영향은 매우 컸으며 그녀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다양한 전시회에 등장했습니다. 
 

작품

한국의 저명한 화가인 천경자는 한국의 현대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의 독특한 예술적 비전과 한국 문화를 보존하고 기념하기 위한 노력은 예술계와 문화 유산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천경자는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를 매끄럽게 혼합하며 한국 예술을 재정의하는 능력으로 유명합니다. 한복을 입은 여인들과 고요한 마을 풍경을 자주 등장시키는 그녀의 활기차고 디테일한 그림은 현대적인 반전과 함께 한국 문화의 본질을 일깨워 줍니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그녀는 한국의 문화와 유산을 예술계의 전면에 내세우며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孤'(1974)는 천경자의 여인상을 대표하는 작례로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처럼 머리에 꽃을 얻은 여인의 도상은 작가의 1970년대 여인상의 전형성으로 개인전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으며 사실상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머리 위 꽃 너울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하여 치장한 모습이 아니고 恨을 자양분 삼아서 꽃을 피워낸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물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고정시키는 것이 이 작품에서부터 나타나는 특징으로 동공을 하얗게 처리한 것과 더불어 감상자의 시선을 눈으로 집중시킵니다 이러한 눈빛은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더욱 강렬하게 변모해가며 감상자들을 우수와 정한의 심연으로 이끕니다 천경자 작품 속 여인은 한결같이 목이 길고 멍한 눈동자를 지녔습니다 진한 화장과 풍성한 머리숱 길고 가는 목 귀와 팔에 화려한 보석까지 걸쳤지만 그 뒤에는 항상 고독이 숨어 있습니다 천경자가 맏딸을 생각하며 그린 것으로 알려진 1990년작 '여인' 역시 여성으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천경자가 딸은 자신처럼 사는 걸 원하지 않는 마음으로 화폭을 채웠습니다 1981년 '장미와 연인'은 81년과 82년을 넘어가는 시기의 천경자 작품은 눈 표현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전까지의 그림과 다르게 이 작품은 정면을 강하게 응시하는 느낌을 주며 전작들의 홍채부분이 많이 눈꺼플에 가려져 있던 모습은 '장미와 연인' 작품 부터는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나다나고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천경자의 독특한 접근법은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작품에서 한국 문화의 풍부한 감성을 느끼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전통과 현대를 불어넣는 그녀의 능력은 예술을 통해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메우려는 현대 예술가들에게 청사진 역할을 했습니다.
 

논란 

예술의 세계에서 논쟁은 종종 예술 그 자체만큼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화가 천경자의 그림으로 알려진 '미인도'는 진위 여부를 놓고 위작 논란이 있었습니다 천경자 본인은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이 '미인도'에 국립현대 미술관이 진품이라고 반론함으로써 그녀는 절필까지 선언하며 일시적으로 창작활동을 멈추었습니다 정치적인 정당성 확보를 위한 공작이라는 의혹까지 이어진 사건이었습니다 1977년작인 '미인도'는 김재규 전 정보부장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었으며 그의 재산이 10.26사건으로 압수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991년3월 문화공보부가 전시작으로 포함시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그림을 직접 확인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과학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진품임을 감정했음에도 천경자는 이에 항변하였으나 당시 67세였던 그녀의 나이와 맞물려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나간 작가'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1999년 고서화 위조범 권춘식이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는 증언을 함으로써 이 사건은 다시 재개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입수 시점과 위조했다고 진술한 시점이 불일치하고 위조자가 수묵화 전문이어서 천경자의 채색화를 위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기존에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검찰에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더 이상 수사가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였고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했던 권준식은 '미인도는 내가 그리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며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다가 다시 재번복 하는 등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쟁과 논란은 예술계에서 필수적인 것이며 청경자의 작품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통과 소박함의 균형에서부터 진정성의 문제 정치와 예술의 기로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예술을 둘러싼 논쟁과 삶은 그녀의 예술 여행의 복잡함을 방증합니다 결국 이러한 어려움들은 그녀의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이해와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더 넓은 교류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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